암살: 밀정 염석진의 반민특위 무죄 방면과 증거재판주의의 냉혹함
2015년 광복 70주년 여름, 1,270만 관객의 가슴속에 뜨거운 불덩이를 지폈던 최동훈 감독의 시대극 걸작 <암살> . 테이프로 다리를 감은 동그란 안경 너머로 모신나강 소총을 겨누던 안옥윤(전지현 분), 낭만적이면서도 처연했던 킬러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분), 그리고 "나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 라며 술잔을 기울이던 조승우 배우의 특별출연까지... 스크린을 꽉 채우던 몰입감은 지금 다시 떠올려도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관객들의 뇌리에서 절대 잊히지 않는 가장 소름 돋는 명장면은 따로 있었습니다. 백발의 노인이 된 임시정부 경무국 대장 출신 염석진(이정재 분)이 해방 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법정 에 섰을 때의 모습이었죠. 동지들을 밀고해 수많은 독립군을 사지로 몰아넣고 일제 고등계 경찰의 앞잡이로 부귀영화를 누렸던 파렴치한 변절자. 방청객들이 "저놈이 밀정이다!" 라며 분노를 터뜨리자, 그는 피고인석에서 벌떡 일어나 셔츠를 찢어 발기며 총상 자국으로 뒤덮인 앙상한 가슴팍을 드러내 보입니다. "내가 왜 배신자냐! 내가 왜 친일파냐! 이 몸속에 왜놈들의 총알이... 박혀 있단 말이다! 종로경찰서에서 왜놈 총알을 여섯 발이나 맞고도 살아난 염석진이야!" 핏대를 세우며 오열하는 그의 뻔뻔한 연극 앞에 재판관은 결국 땅땅 판결봉을 두드리며 '증거 불충분 무죄' 를 선고하고, 염석진은 여유로운 미소를 띠며 법정을 유유히 걸어 나옵니다. 영화관 안의 모든 관객이 주먹을 쥐고 피가 거꾸로 솟았던 이 기막힌 명장면, 문득 현실 법률의 시선으로 날카로운 의문이 스칩니다. "온 국민이 배신자인 걸 다 아는데... 왜 대한민국 법정은 저 악질 밀정 하나를 법대로 처벌하지 못하고 당당하게 무죄로 풀어줘야만 했을까?" 친일 청산이라는 역사의 숙제 앞에서 무력하게 무너져 내렸던 반민족행위처벌법의 한계와,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