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시트: 유독가스 탈출 질주와 옥상 문 파손, 긴급피난과 건물주의 법적 죄책
2019년 무더운 여름날, 극장 문을 나서는 관객들마다 스마트폰 플래시를 껌뻑거리며 입으로 박자를 맞추게 만들었던 레전드 재난 탈출 액션 <엑시트(EXIT)>. 무려 942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재난 영화의 공식을 완전히 새로 쓴 명작이죠. 영화관에서 이 박자 안 따라 해보신 분 거의 없을 겁니다 ㅋㅋㅋ
"따- 따- 따- / 따- 따- 따- / 따- 따- 따- 🎶"
(··· --- ··· SOS 구조 신호 모스부호)
대학 시절 산악부 에이스였지만 몇 년째 취업 문턱을 넘지 못해 온 가족의 구박을 한몸에 받던 청년 백수 이용남(조정석 분). 어머니 칠순 잔치에서 동아리 후배 의주(임윤아 분)를 만나 어색한 인사를 나누던 평화로운 순간, 도심 한복판에 정체불명의 유독가스 테러가 터지며 도시는 아비규환의 생지옥으로 변합니다.
파란색 김장용 대형 쓰레기봉투를 온몸에 둘러 박스테이프로 칭칭 감고, 헬스장 초크 가루를 손에 묻힌 채 건물 외벽을 기어오르던 짠내 나는 생존기! 특히 헬기 구조대를 양보하고 옥상 바닥에 주저앉아 "나도 저거 타고 싶단 말이야 ㅠㅠ"라며 엉엉 울던 윤아 배우의 찌질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연기는 지금 봐도 미소가 절로 번집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던 모든 관객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들고 극심한 분노를 유발했던 장면은 바로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던 옥상 비상문'이었습니다. 영화 끝나고 집에 오자마자 우리 아파트 옥상 문 열려있나 계단 뛰어올라가 확인해 보신 분들 꽤 많으셨을 텐데요.
살기 위해 남의 건물 문짝을 뜯어내고 유리창을 박살 내며 질주했던 두 청춘, 현실 법정의 눈으로 들여다보면 흥미진진한 법적 쟁점들이 쏟아집니다.
"남의 건물 문을 부수고 침입한 용남과 의주는 문짝 수리비를 물어내야 할까?", "옥상 문을 잠가둬서 사람들을 죽을 위기로 몰아넣은 건물주는 법적으로 어떤 처벌을 받을까?"
현대 대한민국 형법과 민법, 그리고 소방시설법의 잣대로 이들의 탈출극을 통쾌하고 날카롭게 파헤쳐 보았습니다.
1. 남의 옥상 문짝 뜯고 유리창 파손: 형법 제22조 '긴급피난'으로 100% 무죄
용남과 의주가 한 행동을 법 조문 글자 그대로만 보면 형법 제366조 재물손괴죄와 형법 제319조 건조물침입죄의 명백한 외관을 띠고 있습니다. 남의 사유지에 허락 없이 들어갔고, 옥상 철문과 유리창을 닥치는 대로 부수며 이동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형법에는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가장 따뜻한 방패가 있습니다.
📌 대한민국 형법 제22조(긴급피난) 제1항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법학에는 '우월적 법익의 원칙'이라는 절대적인 기준이 있습니다. 유독가스는 마시는 즉시 호흡기가 타들어가 몇 분 만에 사망에 이르는 '절대적 생명의 위난'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존엄한 '생명권'은 건물주의 '유리창이나 문짝값(재산권)' 따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으로 소중한 가치입니다. 1분 1초가 급박한 상황에서 문을 부수고 들어간 것은 생명을 지키기 위한 가장 적절하고 불가피한 최소한의 수단이었습니다.
따라서 형법상 긴급피난이 완벽하게 성립하여 범죄의 위법성이 통째로 소멸하므로, 검찰은 기소조차 할 수 없으며 형사상 '100% 완전 무죄'가 내려집니다.
2. "내 문짝값 내놔!" 건물주에게 수리비 물어줘야 할까? 민법 제761조의 반전
형사상 무죄가 나온 것을 보고 건물주가 뒷목을 잡으며 민사소송을 걸어오면 어떨까요?
"너희가 목숨 건진 건 축하하지만, 내 빌딩 방화문이랑 비싼 통유리창 박살 난 수리비 2,000만 원은 물어내야 할 것 아니냐!"
언뜻 들으면 일리 있어 보이지만, 대한민국 민법전 역시 피난자들의 편을 든든하게 들어주고 있습니다.
📌 대한민국 민법 제761조(정당방위, 긴급피난) 제2항
급박한 위난을 피하기 위하여 부득이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다.
그러나 피해자는 그 위난을 야기한 자에 대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민법 제761조 제2항에 따라, 살기 위해 부득이 남의 기물을 파손한 피난자(용남과 의주)는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이 법적으로 완전 면제됩니다. 즉, 건물주는 용남이에게 단 1원도 청구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건물주는 어디서 피눈물 나는 수리비를 보상받아야 할까요? 법 조항에 적혀 있듯 '위난을 야기한 자', 즉 독가스 테러를 일으킨 테러범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합니다. 만약 테러범이 사망했거나 빈털터리라면? 국가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라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통해 피해 상가와 건물주에게 복구 지원금을 지급하게 됩니다.
3. 진짜 감옥에 가야 할 빌런: 옥상 문을 걸어 잠근 건물주의 죄책
영화 속에서 관객들을 가장 분통 터지게 만들었던 인물은 테러범보다도 어쩌면 '옥상 문에 자물쇠를 채워둔 건물 관리인'이었을 것입니다. 열쇠를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용남이가 목숨을 걸고 외벽을 타야만 했던 만악의 근원이었죠.
현실에서 옥상 출입문을 잠가두는 행위는 소방 당국이 가장 엄단하는 중대한 위법 행위입니다.
📌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16조(피난시설 등의 유지·관리)
누구든지 피난시설, 방화구획 및 방화시설을 폐쇄하거나 훼손하는 행위, 주위에 물건을 쌓아두거나 장애물을 설치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 적발 시 최대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 및 시정명령
많은 건물 관리인들이 청소년 흡연이나 추락 사고, 도난 방지를 핑계로 옥상 문을 쇠사슬로 묶어두곤 합니다. 하지만 화재나 유독가스 유출 시 고층 건물에서 옥상은 헬기 구조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최후의 피난처'입니다.
만약 영화 속에서 옥상 문이 잠겨 있어 가족들이 유독가스를 마시고 사망하거나 다쳤다면? 건물주와 관리소장은 과태료 수준으로 끝나지 않고 형법 제268조 업무상과실치사상죄(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로 즉각 구속되어 실형을 살아야 하는 중범죄자가 됩니다.
(참고로 현행 건축법 및 주택건설기준 규정에 따르면, 2016년 이후 건설된 공동주택 옥상문에는 평소엔 범죄 예방을 위해 잠겨 있다가도 화재 경보가 울리면 자동으로 락이 풀리는 '전자식 자동개폐장치' 설치가 법적으로 의무화되어 있습니다.)
4. "살기 위해 달린 청춘을 법은 결코 처벌하지 않는다"
영화의 클라이맥스, 공중에 뜬 수십 대의 시민 드론들이 비춰주는 불빛을 길잡이 삼아 타워크레인을 향해 날아오르던 용남과 의주의 질주는 한국 영화사에서 가장 가슴 벅찬 명장면 중 하나였습니다. 쓸모없는 잉여 취급을 받던 청년들의 튼튼한 팔뚝과 산악부 기술이 수많은 목숨을 구하는 가장 위대한 날개가 되었던 순간이었죠.
영화 <엑시트>는 절체절명의 재난 속에서 "법이란 서류 위의 문짝값보다 한 인간의 고귀한 숨결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는 형법상 긴급피난의 숭고한 원리를 가장 유쾌하고 통쾌하게 웅변해 준 작품입니다.
살기 위한 정당한 몸부림 앞에서는 남의 문짝을 부수고 유리창을 깨더라도 활짝 문을 열어주는 법의 온기. 그 따뜻한 법치주의의 품이 있었기에, 옥상에서 외치던 그들의 절규는 비극이 아닌 찬란한 희망의 찬가로 기억될 수 있었습니다.
🏢 오늘 우리 집 옥상 문은 안녕하십니까?
"도난·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잠가야 한다는 관리실 입장 vs 비상시 탈출을 위해 24시간 열려 있어야 한다는 소방 원칙! 여러분이 살고 계신 아파트나 건물의 옥상 비상문은 지금 열려 있나요? 여러분의 생각을 편하게 들려주세요!"